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 정보

카지노 시즌2 결말 분석 - 인물 관계 관점

by 낭호 2023. 3. 27.

최근 몇 주간 관심 있게 시청했던 드라마 카지노가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다소 허무한 결말은 작품의 주제인 '화무십일홍'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결말보다는 작품 자체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이제훈의 등장은 신선하긴 했지만 굳이 꼭 필요했나 싶고(시즌3의 포석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시간에 주요 인물들 간 서사의 마무리에 좀 더 공을 들이는 것이 허무한 결말의 개연성을 조금은 더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관성을 잃고 급격하게 흔들린 차무식 캐릭터

차무식은 인간관계에 있어 굉장히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뛰어난 본능으로 항상 위기에서 벗어나며 험한 인생길에서 살아남은 인물입니다. 물론 예외가 있었죠. 끝까지 충성을 다했던 민회장과의 관계, 그리고 거의 친자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치지 못했던 정팔과의 관계입니다. 결국 이 민회장 살해 사건에 얽혀버리면서 성공가도에 금이 가게 되고 끝까지 챙겼던 정팔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데요.

그렇게 치밀하던 차무식이 다 털려버린 금고를 보고도 정팔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 것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극 전반을 통해 나타난 차무식은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하거나 또는 그냥 넘어가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마지막 주택에서 정팔과 상구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본래대로라면 차무식이 함정을 파고 이들을 어떻게든 응징하는 것이 차무식다운 모습이지요. 보면서 그런 장면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짧은 총격전 한 판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버립니다.

다니엘을 피해 한국으로 도피한 후의 행적도 차무식과 어울리지 않았죠.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 필리핀에서의 모든 사업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너무 태평하죠. 어떻게든 모든 연결줄을 이용해서 상황을 긍정적인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할 타이밍에 그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서 회포를 풀고, 뜬금없는 사업제안에 응하다가 뒤통수를 맞기도 하는 등 차무식답지 않은 모습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얽혀버린 원한과 은혜

차무식은 자신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충성한 대상인 민회장을 죽인 자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벌하려 했죠. 차무식의 왼팔 상구 역시 자신의 친구 필립을 죽인 자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복수하려 합니다. 안정적인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할 정도로 이들의 관계가 진한 의리로 연결되어 있었는지가 의문인데요. 그나마 차무식과 민회장의 서사에서는 드라마 내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지만, 상구의 서사에서는 찾기가 좀 어렵죠.

의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었을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상구 캐릭터는 말이 많지 않은 대신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많은 느낌을 전달했기 때문에  더더욱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정팔은 차무식을 배신하지만 이것은 극 내내 이어진 서사로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차무식은 정팔이 세상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죠. 배신의 이유가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다 차무식에게 죽은 소정에 대한 복수심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상구가 배신을 제안했을 때도 무시해 버렸었죠. 머리로는 차무식이 자신의 은인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사가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 그러한 은혜는 머릿속에서 지워집니다. 인생에서 반드시 손절해야 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 낸 것 같네요.

차무식은 왜 정팔을 손절하지 못했을까. 정 때문에가 아닐까요. 시시콜콜한 일들을 처리하는데 유용했기 때문에 데리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정팔은 차무식 인생에서 몇 안되는 정 붙인 사람입니다. 차무식은 거의 남에게 정을 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일단 내 사람이라 받아들인 후에는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일처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단 정이 들게 되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쉽게 내치지는 못하는게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도 영향을 줄 수 있고요. 상대방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원래 내가 좋아하던 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게됩니다. 이런 점이 표현된게 아닌가 싶네요.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작품의 주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것으로 보입니다. 10일 넘게 붉게 피어있는 꽃은 없다는 말로, 아무리 화려하고 막강한 권력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극 초반에 정팔이 했던 말로 이미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정해진 결말을 향해 드라마는 급하게 달려갑니다.

차무식이 해변에서 바다를 보면서 눈물을 보이는데 어떤 회한 같은 것을 표현하려 한 듯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후에 주위를 둘러보니 의지할 사람 하나가 없었던 것이지요. 잘 나갈 때는 귀찮을 정도로 주변에 들끓던 사람들이 안 좋은 상황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서 지인들을 불러 어울려도 봤지만 헛헛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배신을 알고도 그나마 제일 가까웠던 정팔과 상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닐까요.

국보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한도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추운 겨울이 되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걸 알게 된다'는 의미로 ≪논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잎은 모든 나무가 푸른 잎을 피우고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겨울에는 그 푸름이 드러나게 되죠.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희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었는데 좋은 날에 같이 웃었던 대부분의 지인들이 등을 돌리고 그를 쳐다보지 않았죠.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귀한 서적들을 입수하여 보내주고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는 등 극진히 자신을 챙기면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제자를 보며 떠올린 구절이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리는 좋은 날들에 더욱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달콤한 말들과 모든 것이 계속 잘 될 것 같은 그 기분에 취해버리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아무래도 사리분별력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초보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사고를 내는 때는 잔뜩 겁먹은 채 조심스레 운전하던 때가 아니라 이제 운전을 좀 알겠다고 생각하는 때이지요.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좋은 때와 안 좋은 때의 차이를 좁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인생을 좀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살다 보면 '나는 진짜 의리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은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이 반복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말의 진위는 자연스레 구분됩니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있던, 아니면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건,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면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이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무식의 경우와는 달리 말이죠.

빠르게 마무리된 결말은 아쉬웠지만 인생과 인간관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드라마 카지노는 나름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 번쯤 시청해 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댓글